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 적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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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適正技術, appropriate technology)이란 보통 제3세계의 문화·정치·환경적인 면들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기술을 의미합니다. 19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그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안한 최첨단 기술보다 비용이 덜 들고 소박한 ‘중간 기술’에서 시작된 개념입니다. 한스 바커는 적정기술을 인간의 기본적 필요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기술로 정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적정기술은 인간의 절대적인 필요를 찌르는,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제의 도움을 주는 기술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실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비용이 적게 들고(유지 보수가 쉬워야 하고), 현지의 재료로 쉽게 제작이 가능해야 하며, 사용법이 쉬워야 합니다. 바로 앞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User와 Context를 이해한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 기술이 무조건 더 효율적이고 훌륭하니까 사용해!라는 접근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들어가야 하고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User)와 맥락(Context)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3세계를 위한 기술이든 선진국의 소외계층을 위한 기술이든 무상으로 제공하든 유상으로 제공하든 마찬가지죠.

 

아이들이 놀이기구처럼 타고 놀면서 물을 구할 수 있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유명한 Playpump가 어쩌다가 적정기술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되었을까요?

Playpump는 직접 돌리고 타는 회전 놀이기구에 펌프 기능을 붙여서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놀면 지하수를 끌어모으게 되고 이는 탱크에 저장되어 수도꼭지를 통해 물을 공급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놀이기구는 한번 힘을 써서 돌리면 그 후에는 관성에 따라 돌아가기 때문에 ‘놀이기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데 Playpump는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물을 저장하고 어떻게 공급하는지의 원리는 차치하고라도 이름은 Playpump인데 놀이기구로의 의미도 없고 그냥 기존의 펌프질을 하는 것보다 더 힘만 드는 애물단지가 돼버린 거죠. 설치비용과 유지비용 또한 너무 비싼 데다 현지 테스트도 없이 일단 설치를 해버려 이미 설치한 우물을 못쓰게 만드는 결과까지 낳았습니다.

‘물을 길을 수 있는 놀이기구’라는 기본 디자인도 완전히 실패했을 뿐 아니라 설치 과정에서 로컬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부재했던 반복되어서는 안될 사례입니다.

이미지 출처: permaculturenews.org

이미지 출처: www.wakingtimes.com

이미지 출처: literoflight.org

무거운 양동이를이고 수십 킬로를 걷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굴리면서 물을 옮길 수 있는 Q 드럼, 수질이 나쁜 물도 바로 정화해서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페트병을 재활용하여 빛을 만드는 a Liter of LIGHT는 가장 유명한 적정기술의 예죠.

이미지 출처: goodchange.gni.kr

국내에도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단체인 ‘나눔과기술’과 굿네이버스가 함께 만든 지세이버(G-Saver)입니다.

몽골의 유목민은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천막 속에서 갈탄을 태우는데, 갈탄의 불완전연소 때문에 일산화탄소가 엄청나게 나오게 됩니다. 이는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대기오염의 주범인데요. 지세이버는 이런 일산화탄소를 줄이고 난방 지속 속도는 늘려주고 비용도 절반가량으로 절감시켜줍니다. 기존의 난로에 부착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설치도 매우 쉬워 이미 5만 대 가량을 보급한 상태입니다. 최근 몽골의 경기 침체로 다수의 유목민이 도시로 몰려들고 있고 다수의 국민이 도심 속에서도 게르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연료를 살 돈이 없는 빈민들은 폐타이어를 태우기도 하는 현실 속에서 지세이버의 효용을 더욱 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컬에 안착한 적정기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디자인 이전에 그 제품을 사용할 User와 그들의 삶, 행동 Context의 이해가 선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최신의 기술이라도 사용자들에게 선택받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전제가 적정기술에서는 이따금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적정기술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User와 Context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화, 환경을 이해하고 적절한 비용으로 개발되어야 수혜자 아니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입니다. 활용되지 않는 디자인은 말 그대로 무쓸모입니다. Playpump가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결국 선택받지 못한 고철덩이가 되었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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