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dyson)의 성공, 그 속에 담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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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1월 25th, 2021 at 06:25 오후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한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헤어드라이어, 모두 영국 가전제품 기업 ‘다이슨’의 제품이다. 다이슨은 내는 제품마다 큰 사랑을 받으며 ‘비틀즈 이후 가장 성공적인 영국 제품’, ‘영국의 애플’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외형과 디자인이다. 그렇다 보니 다이슨의 성공 비결도 제품 디자인에 있다는 시선이 강하다. 이전에 없던 디자인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의 말은 다르다. 그는 “디자인은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고 했다. ‘디자인은 기능에 집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다이슨은 보기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기능적으로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1978년, 제임스 다이슨은 실내 도장실의 에어필터가 도료에 의해 막히는 것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집에서 사용하는 진공청소기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지봉투의 구멍이 먼지에 막혀 흡입력이 약해지는 일이 빈번했다.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던 문제였지만 어느 누구도 해결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먼지를 걸러주는 기능은 꼭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다이슨은 이를 해결하려 했다. 긴 연구와 5,127회에 달하는 시제품 테스트를 통해 결국 ‘사이클론 테크놀로지’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강력한 원심력으로 강한 중력을 청소기 내에 발생시켜 먼지나 미세입자를 먼지봉투 없이도 투명 먼지 통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다.

2007년, 제임스 다이슨은 선풍기를 보고 날개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와 날개를 분리해야만 청소할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 생각했다. 역시 누구도 이를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다이슨은 선풍기가 날개 없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3년여의 연구 끝에 ‘날개 없는 선풍기’를 개발하게 된다. 이 선풍기의 원통형 기둥에는 수십 개의 작은 공기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곳을 통해 외부의 공기가 유입된다. 기둥 안에 있는 날개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빨아들인 공기를 원형 고리 부분에 세게 밀어 넣는다. 증폭된 공기는 시원한 바람으로 다가온다.

두 가지 모두 일반 상식을 뒤엎는 혁신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건 다이슨의 기업 운영 방침이다. 다이슨은 전체 직원 7천여 명 중 R&D(연구개발) 부서 직원이 2천여 명에 달하며,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380억 원을 R&D에 투자했다. 다이슨은 완전히 기술지향적 기업이다. 아니, 기술이 곧 다이슨을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더 나은 기능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힘쓴다.

철저히 기술에 집중하기에 다이슨의 제품 개발 과정을 보면 디자인에 대한 고민은 찾기 힘들다. 한 다이슨 관계자는 아래와 같이 말하기도 했다.

“일부 엔지니어가 디자인 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다이슨에서 디자인은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제품이 어떻게 보일지 구상한 뒤에 제품을 개발하지 않는다. 일상의 불편함을 살펴 소비자들의 욕구를 세심하게 짚어낸 뒤, 무엇이 디자인이고 무엇이 기술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통합된 제품 설계를 통해 군더더기 없이 핵심 기능만을 강조한 기능미를 제시한다.”

 

디자인을 철저히 부가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이슨 관계자가 말한 ‘일부일 뿐인’ 디자인은 ‘물리적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기 위한 것’을 지칭한다. 이는 전통적 의미의 디자인이다. 한동안 디자인은 이렇게 그저 제품의 외형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넓어졌다. 디자인은 본래 ‘지시하다’, ‘성취하다’, ‘계획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했다. 어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디자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쉽게 말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를 바꿔 나가는 것’이 디자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을 ‘디자인적 사고(디자인 씽킹)’라고 한다. 많은 기업이 전반적 비즈니스의 문제 해결 과정에 디자인적 사고를 도입하고 있다. 사람들이 느끼는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방식이 혁신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혁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의 리더들은 디자인적 사고를 모든 프로세스에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이슨은 디자인을 등한시하는 기업이 아니다. 오히려 디자인이 모든 프로세스에 잘 녹여져 있는 기업이다. 관계자의 말 중 ‘무엇이 디자인이고 무엇이 기술한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통합된 제품 설계’라는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이슨은 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기능에 집중한다.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들 때는 날개가 더러워져 매번 청소를 해야 하며 어린아이의 경우 선풍기 날개에 손가락을 다칠 수 있다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날개를 없애자는 가설을 세우고, 기능을 개발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혁신은 디자인적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이슨의 제품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절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능이었다. 기능에 집중함으로써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고, 먼지봉투와 날개가 없는 청소기와 선풍기와 같이 그 자체로 독창적인 디자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저 심미적인 요소만 추구하여 예쁜기만 한 가전제품을 만들고자 했다면 다이슨만큼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좋은 디자인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나온다는 역설을 다이슨은 일찌감치 이해하고 있었다.

다이슨의 디자인적 사고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에는 그들의 철학이 있었다. 일상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한다는 탄탄한 비전을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해왔기에 오랜 시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유례없이 변화가 빠르고, 경쟁이 심한 이 시대에서는 뿌리가 탄탄해야 한다. 뿌리는 철학으로부터 시작되고, 가지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고방식을 통해 뻗어나간다. 디자인적 사고방식은 다이슨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면, 상품이 특색을 잃어가고 있다면 시작의 철학을 재정비하자, 그리고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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