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무지, MUJI)의 디자인이 담백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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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이 찍혀있지 않은 좋은 제품’이라는 뜻의 무인양품(無印良品). 물건만 보면 무인양품 제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흔한 로고도 없다. 디자인도 단순해서 특별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모든 것을 비워낸 듯한 간결함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누구라도 절제되고 밋밋한 디자인을 보면 무인양품의 제품이란 걸 알 수 있을 만큼 ‘브랜드가 없다.’라는 사실 그 자체가 그들의 브랜드가 되었다.

무인양품은 일본이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던 1980년대, 온갖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제품이 넘쳐났던 시기에 태어났다. 그 시대의 다른 브랜드들과 정 반대의 성질을 지니고 말이다. 제품의 ‘기능’과는 큰 상관이 없는 생산 프로세스나 디자인, 패키징은 최대한 간소화한 채,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생략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냈다. 화려한 디자인 대신 제품의 본질인 실용성과 기능에 집중한 것이다. 무인양품의 핵심 메시지인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이러한 행보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브랜드라는 것은 원래 다분히 상업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게 좋아.’, ‘이게 아니면 안 돼.’라는 인식을 심어 더 많은 매출을 내기 위한 장치였다. 반면 무인양품이 이루고자 했던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가치는 전통적 브랜딩의 의미와는 완전히 다르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했던 시대에 사람들이 더욱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소비를 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비전이 담겨 있었다. 이 과정에서 화려한 디자인이나 패키징은 제품의 실용성, 기능에 비하면 우선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인양품은 디자인 자체를 제품의 기능에 집중한 뒤에 신경 써야 할 부가적인 요소로 본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무인양품의 디자인을 ‘제품을 제대로 만드는 방향’으로 통합시켜 이끌어나가고자 했다. 이는 무인양품에 디자인적 사고(디자인 씽킹)가 깊숙이 들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본래 디자인의 의미는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즉 디자인적 사고는 곧 외양적인 것이 아닌 ‘문제 해결’에 핵심을 두는 것을 말한다. 이 관점에서 외양적 디자인은 핵심으로 두는 가치에 녹여져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요소다. 무인양품의 밋밋하고 간결한 디자인, 그 자체로 특별해진 디자인은 바로 무인양품이 추구했던, 실용적, 저 비용의 방향에서 우러나왔다. 오히려 디자인을 뒷전으로 본 것이 아니라 기업의 핵심 가치부터 생산, 유통, 판매, 디자인까지 전 과정에 걸쳐 모든 사고에 디자인적인 생각이 스며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WEEKLY BIZ] “디자인 없는 게 우리 디자인” 기이한 무인양품 3無 전략 (조선비즈, 17.04.08)

무인양품이 이전에 없던 그들만의 가치를 세운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3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는 것은 더욱 대단하다. 예술가라면 상업적 요소를 떠난 본질을 지켜나가는 것이 쉬울지 몰라도, 그것이 비즈니스가 되면 지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유연성도 떨어져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가기도 어려울 텐데, 변화의 과정에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았으니 정말 경이롭다. 오랜 시간 지켜온 핵심은 무인양품이 가졌던 시작의 신념을 오늘날 소비자들도 같이 느끼게 했다. 소비자들은 무인양품의 생각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소비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핵심을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핵심을 놓치지 않았던 것, 그리고 무인양품의 직원들이 모두가 그 핵심을 공유할 수 있도록 ‘기준’과 ‘가이드’를 만든 것, 그렇게 ‘구조’를 구축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무인양품은 “이런 것까지 시키는 대로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깐깐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점원이 고객과 ‘잔돈을 주고받는 방법’까지 매뉴얼화되어있는 식이다. 이런 활동 모두 문제를 해결하려는 디자인적 사고를 통한 목적.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핵심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깊숙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인양품도 위기가 있었고, 단기적인 매출에 시선이 팔릴 위험을 몇 번이나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 우선순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운영진의 확고함은 무인양품을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게 했다.

매력적인 브랜드는 절대로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 하나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적 사고로 시작한 비전이 회사 자체에 녹아들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며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디자인적 사고로 접근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정보 습득이 쉬워지고 연결성으로 인해 의견 나눔이 쉬워진 이 시대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미션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금세 알아채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기업이 있다면 그들은 어떤 가치를 품고 성장해 왔는지 살펴보자. 훨씬 더 깊은 곳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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