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가 아닌 코드를 보게 된 피아니스트. 프로그래밍 강의를 만들게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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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발자 출신이 아니다. 심지어 수포자였고, 음대생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프로그래밍이 낯선 사람의 심정을 잘 안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예고를 나왔고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래서 ‘패스트캠퍼스 프로그래밍 코스 팀 팀장’이라는 지금의 내 직함이 어색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런 기질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사다 놓으신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잡지를 어려서부터 보는 걸 좋아했다. 잡지마다 부록으로 달려있던 소프트웨어 CD를 만져보고 틀어보는 것이 취미였다. 현실에서 접한 취미를 컴퓨터를 통해 표현하는 것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음악은 물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던 나는 컴퓨터로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피아노 건반만큼 키보드를 사랑했다.


음악가들의 고충을 깨닫다

내가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들어왔던 피드백은 ‘느낌’에 의존한 내용이거나, 정량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오보에 처럼 소리를 내봐’ 라던가 ‘더 장엄한 느낌으로 쳐봐’ 와 같은 것이었다. 난 그게 항상 불편했다. 레슨 때 지시받은 내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가 없어서 자주 연습실에서 홀로 고민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이런 고민이 깊어질수록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다소 수직적 구조로 경직되어있던 음대 분위기에서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어려웠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인문, 자연계, 공대 등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특히 공대생들을 만나면서 늘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려고 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모습을 봤다.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때때로 중요한 내용을 논의하다가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도 많이 봤는데, 그게 참 좋아 보였다. 나는 그런 토론하는 분위기가 음악 분야에도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나의 적극적이고 집요한 질문에는 항상 싸늘한 시선이 돌아왔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왜 음악에 대한 설명이나 지도는 애매한 표현 일색일까?’라는 고민이 생겼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음악학도들을 위해 연구를 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가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낼 때 신체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공통점이 있는지 등을 찾아서 매번 소리가 작다는 피드백을 듣는 학생들한테 실질적인 조언을 줄 수 있는 그런 교육이 있다면 참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분이 해결된다면, ‘나는 재능이 없어’, 혹은 ‘난 늦게 시작해서 가망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을 거고, 음악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 인 것 같다. 그런 문제의 실마리를 줄 수 있는 분야가 공학이고, 그 분야에 가면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에 첫 발을 내딛다
음악 감상 동아리 ‘고전 음악회’에서 활동했었다. 그곳에서 공학도 선배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들은 어릴 적부터 컴퓨터 디자인 툴이나 음악 툴을 다뤄왔던 나에게 ‘우리 웹 만드는데 디자인해볼래?’, ‘이번에 게임 만드는데 배경음악 만들어 볼래?’라는 제안을 종종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프로그래머들과 살을 부대끼면서 일하며 많은 걸 배웠다. 얕고 짧았지만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앞으로 내가 뭘 하던 IT를 알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깨너머로 개발자들이 하는 작업을 구경하고, 나도 따라 생각하는 걸 바로 코드로 표현하고,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학습해서 바로 고쳐볼 수 있고, 또 내 결과물을 전 세계의 다른 이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게 정말 좋았다. 이 작업이 내 적성에 더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개발을 하면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닌, 프로토타입 수준이언정 ‘생각’을 ‘실체’로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창업을 하다

졸업을 하고 동기들이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갈 때,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수많은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 되기보다 개발 능력을 길러 좀 더 음악 산업 전반에 도움을 주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했다. Udacity의 Intro to Computer Science, Web Development 프로그래밍 강의를 들으면서 기초를 다졌고, 이두희 대표로 유명한 프로그래밍 교육 단체 ‘멋쟁이 사자처럼’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조금씩 프로그래밍 지식 역량을 쌓고 나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창업’ 준비를 하게 된다. 내가 느껴왔던 음악가들의 현실적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음악가들이 결혼식 같은 행사에서 공연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이러한 연주는 대부분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진행되는데, 음악가들에 대한 관리는 전무한 상태로 시간이 맞는 연주자를 아무나 엮어서 보내버리는 시스템이 만연했다. 행사 3일 전에 급히 예식장에 파견되어, 행사 당일에 처음 만나는 사람과 연주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잦았다. 이러다 보니 연주의 퀄리티도 떨어지고, 고객은 같은 돈을 내고서도 자기 행사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복불복인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래서 뮤지션들의 데이터를 쌓아서 공개하고 적재적소에 그들을 소개할 수 있는 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다. 이 서비스가 생각처럼 구현된다면 연주자와 고객 모두 장기적으로 그런 불편함을 겪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료들과 웹사이트도 만들고 디캠프와 프라이머 엔턴십에서 피칭도 했다. CEO부터 연주자, 개발자, 디자이너 역할까지 도맡아 했던 기억이 난다.
피칭 중인 김슬기 매니저
하지만 유튜브에 연주자들의 영상을 올리고 예약 서비스도 추가하는 등 점점 구체화되고 있던 그 사업은 현실적인 리소스 부족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사업이 커져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서비스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연주자들을 금전적으로도 서포트해 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계속 좋은 연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급여도 줘야 했고, 연주자들의 악기 유지 보수도 도와줘야 했다. 엄청난 책임감을 느꼈지만 작은 스타트업에겐 너무 과도한 지출이었다. 부족한 자금과 시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계속 스타트업이라는 미명하에 뮤지션들을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패스트캠퍼스와 만나다

30대 중반에 이 사업을 다시 시도하겠다는 결심을 한 나는 잠시 그 뜻을 뒤로하고 피아노 레슨을 다니고 취업 준비를 하며 몇 개월의 공백기를 보냈다. 그때 우연한 계기에 패스트캠퍼스 채용 공고를 보게 됐는데, 당시에는 패스트캠퍼스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여섯 번 째 멤버였다. 하지만 평소 나도 음악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많이 고민했었으니, 대한민국 실무자들을 위한 교육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오면 배울 게 많을 것 같았고, 내가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패스트캠퍼스에 지원했고, 합류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강의의 코스 매니저가 됐다. 나는 개발자들만큼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개발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는 법을 알았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강의의 기획과 홍보, 관리를 도맡아 하면서 정말 큰 즐거움을 느꼈다. 현업 개발자인 강사님들과 토론하고 질문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예술인들 사이에서 매번 눈치 보며 의견 하나 제대로 발의하기 어려웠던 내 모습과는 다른 내가 있었다.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며, 같은 목표지점을 위해 때로는 공격적인 모습이 나올지라도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느낀 적 없던 뿌듯함
나는 개발자 출신이 아니다. 심지어 수포자였고, 음대생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프로그래밍이 낯선 사람의 심정을 잘 알았다. 프로그래밍을 만나는 사람이 어떤 지점에서 이질감을 느끼는지, 어떤 부분에서 괴로워하는지 보인다. 그래서 수강생의 수준에 따라 적합한 수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학습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 강의가 더 잘 다가갔던 것 같다.

 

차경묵 강사님과 함께했던 ‘웹 서비스 개발 CAMP’에서 만났던 한 수강생은 내가 기획한 강의를 듣고 역량을 키워 패스트캠퍼스의 조교로 활동하다 강사로 데뷔까지 했다. 디지털 마케팅 SCHOOL의 강사를 거쳐 Node.JS & React 강의를 한다. 가장 성공한 수강생이랄까. 개인적인 친분도 많이 쌓았고, 옆에서 커리어를 높이는 과정을 지켜봐온 사람이다.이렇게 이 일을 할수록 내가 기획한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적 없던 뿌듯함을 느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퇴근하고도 강의실에 찾아오고, 주말에도 그 열정을 잃지 않는 수강생들을 보면 내가 다 힘이 난다. 내가 음악과 개발이라는 상반된 집단을 동시에 밀접하게 접해온 만큼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하기에 더 적절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것 같아서, 음악과 창업을 했던 지난 시간들이 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패스트캠퍼스에서 일을 할 때면 행복한 기분도 든다.

새로운 목표

지금 나는 패스트캠퍼스 프로그래밍 코스 팀의 팀장이 됐다. 갈수록 높아지는 강의 수준과 늘어나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내 목표도 점점 높아진다. 나는 국비지원 프로그래밍 강의와의 차별화를 넘어 한국의 IT 교육하면 패스트캠퍼스가 생각나게 만들고 싶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 쉽게 개발을 접할 수 있도록,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강의를 기획할 것이다. 또한 실무자들에게는 지금의 실력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도전적이고 좋은 커리큘럼을 만들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나같이 다른 길을 걸어왔던,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멋진 팀을 구성하고 계속 나아가고 싶다. 사람들이 IT 동향을 파악할 때 패스트캠퍼스 프로그래밍 강의를 먼저 살펴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계속 역량을 키워 언젠가는 내가 몸담았던 음악계에 한줄기 빛이 되고자 한다. IT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예술가들을 이끌어주고 싶다. 언젠가는 음대생들만 데리고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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