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를 꿈꾸던 문과생, 프로그래밍 강의 매니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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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부터 ‘제인 구달’을 사랑했다. 제인 구달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를 연구한 동물학자다. 그녀는 침팬지가 육식을 좋아하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학설을 뒤집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제인 구달처럼 무언가를 깊이 관찰하고 연구해 고정관념을 깨는 것, 그렇게 진짜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사람을 그렇게 바라보고 싶었다. 국가, 지역, 문화마다 어떻게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는 직접 내 눈으로 관찰하고 경험하는 방식의 공부를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을 ‘관찰하면서’, 사회와 문화를 ‘체험하면서’ 보다 깊게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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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처럼, 무언가를 깊이 탐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미지 출처: 서울신문 유튜브

사람이 바글바글한 도시에서부터 시골까지 직접 다니며 공간과 사람을 연구했다. 그저 문헌을 들춰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장 중심적인 연구를 했다. 귀농 연구를 했을 때는 귀농민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토착민의 관점은 무엇인지를 연구하기 위해 마을회관에서 며칠을 머물며 농사일을 도왔다. 뉴멕시코에 가서 우리 문화의 그 배경과 그들의 그것이 얼마나 다른지 체험하기도 했다. 한 번은 새터민(탈북민) 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과 북한이 축구 경기를 할 때였다. 새터민은 북한이 싫어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을 응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면서, 조국은 저버릴 수 없는 거라며 북한을 응원했다. 알면 알수록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고정관념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 졸업반 때 <요리 인류>라는, 음식 문화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풀어내는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리서처로 일하게 됐다. 조사도 하고, 번역도 하고, 섭외도 하고, 촬영 리서치도 하고, 해외 촬영도 따라가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꼈다. 그 모든 일이 사람을 탐구하는 일이었고, 탐구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다큐멘터리 PD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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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언론 고시’라고 불리는 방송사 입사 시험에 매달렸다. 그런데 잘 안 됐다. 최종 면접까지 가본 적도 있었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렇게 4년 반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다큐멘터리 PD에만 집중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내 결심을 꺾이게 한 건 수많은 실패들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언젠가는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다만, 4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돌아봤을 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그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였다.

언론사 시험은 정형화되어 있었다. 논술, 작문, 면접… 말 그대로 시험이었다. 그런 것들에만 집중하다 보니 나는 세상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TV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고, 바이스(Vice)나 넷플릭스(Netflix) 같은 온라인 매체가 만드는 다큐멘터리가 더 흥미를 끌었다. 최고의 신문사라 일컬어졌던 뉴욕타임스는 뼈를 깎는 디지털 혁신에 돌입했고, 그 사이에 허핑턴포스트, 버즈피드, 쿼츠(Quartz), 복스 미디어(Vox)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온라인을 통해 성장했다. TV보다는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더 많이, 더 빨리 정보를 전달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언론사 시험에 목을 매고 있었다.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나 자신을 보고 나니 참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가 탐구한 사람들의 모습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제대로, 깊이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는데 정작 나 자신이 그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현실에 눈을 돌리고 나니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았다. 뉴미디어 시대에서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서는 글쓰기 능력은 물론이고 영상 제작, 나아가 프로그래밍도 할 줄 알아야 했다. 해외 언론사, 특히 뉴미디어 그룹을 보면 저널리스트에게도 모두 그런 능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점수에 그칠 시험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만 담아낼 줄 알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콘텐츠의 담아내는 기술이 없다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다. 이를 알았을 때는 막막함에만 휩쌓여 있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패스트캠퍼스 프로그래밍 강의를 듣고 개발을 배우겠다는 친구의 말을 비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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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패스트캠퍼스에 합류한 건 패스트캠퍼스가 프로그래밍 강의를 비롯해 그런 ‘기술’을 교육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출발점에 선 것 같았기에 내가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고자 했다. 게다가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잠시 길을 벗어나더라도 미래를 위해 배우자’ 정도의 생각이었다.

코스 매니저로서 ‘프론트엔드 개발 SCHOOL’의 기획과 관리를 맡았다. 수많은 수강생들과 강사들을 만나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세상이 정말 변했으며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과, 내가 ‘늦었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사실은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때였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패스트캠퍼스를 찾아왔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늦었다는 나의 생각 자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요즘 세상에 늦었다는 건 없었다. 유래 없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계속해서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패스트캠퍼스는 일을 하면서도 내 역량을 키우는 것이 가능한 곳이었다. 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면으로 노력했다. 더 좋은 프로그래밍 강의를 위해 수강생분들과, 강사님들과 소통하면서, 따로 남아 공부를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내게 부족했던 ‘기술’에 대한 부분을 계속 채워나갔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비전공자였기 때문에 더 좋은 부분도 있었다. 프로그래밍 강의 수강생들도 비전공자였기에 필요한 부분을 먼저 알아차렸고, 더 적합한 기획을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게 맞는지 걱정하고 염려하는 수강생들의 마음에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새로운 걸 배워가며 인생을 바꾸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불과 3개월 만에 프로그래밍 문외한이었던 사람이 그럴듯한 코드를 짜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아가 취업까지 성공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적 없던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배우고자 들어왔던 이곳에서 나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사람을 알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이제 패스트캠퍼스에 입사할 당시와는 생각이 바뀌었다. 다큐멘터리라는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몇 천, 몇 만 명의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고 감동 사키는 일도 멋진 일이지만, 여기에서 30명 남짓한 수강생들에게 콘텐츠를 만들어서 보여주고, 그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어쩌면 훨씬 더 좋은 일이었다. 나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고 싶었다. 지금 나는 수강생들의 세계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수강생의 배경과 목표를 파악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을 도와주면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들이 모르던 것을 파헤치고 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는 꿈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그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인지, 혹은 다른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그 방향으로 계속 나가고 있고, 패스트캠퍼스에서 하고 있는 일은 이를 이루기 위한 최고의 준비가 될 것이라는 거다. 언젠가는 보다 많은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전에 패스트캠퍼스에서 더 오래,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 내가 맡고 있는 프로그래밍 강의의 수강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도울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꿈을 이루는 걸 도우면서 내 꿈도 차근차근 이뤄나가고 싶다.

프론트엔드 개발 SCHOOL 홍지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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