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 않은 일을 꽤 오랫동안 했어요.”
기계공학을 전공했어요. 대학 진학에 이렇다 할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거 ‘점수에 맞춰’ 선택한 전공이었죠.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주어진 것에 충실히,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고 할까요.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중공업에서 일했고 커리어를 착실히 쌓았죠. 그런데 일한 지 6년이 지나고 나서야, 33살이 되어서야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하는 건 아닐까.”
사실 기계공학과보다는 컴퓨터공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어릴 적부터 컴퓨터가 좋았거든요. ‘개발’이라는 개념조차 잘 모를 때도 컴퓨터를 다루고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입시를 준비할 당시 벤처 붐이 일면서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죠. 그래서 대학 원서도 컴퓨터공학과로 넣었지만, 아쉽게도 합격할만한 점수를 받지 못했어요. 대신 합격할 수 있었던 기계공학과로 가게 된 거예요.
컴퓨터가 좋았지만 거창한 꿈이나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아쉬움도 없었어요. 그보다는 주어진 것에 충실하게 임하려고 했죠. 그냥 되게 평범했던 것 같아요. 시험을 보고,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땄죠. 전형적인 기계공학과 학생의 모습으로요. 첫 직장도 그랬어요. 전공을 살려 중공업에 들어갔죠. 항상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년 정도 근무했을 때, 돌아보니 제가 너무 흥미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재미가 없으니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라는 게 있잖아요. 돈도 벌어야 하고, 대학 때부터 쌓아온 커리어가 있는데, 다른 길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래서 생각만 가진 채 딱히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고, 그저 푸념만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시간이 갔죠.
다만 그제야 떠올렸던 생각은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거였죠. 바로 컴퓨터. 저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컴퓨터를 여전히 놓지 않고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PC 정비사 자격증도 땄고, 겉핥기 식으로나마 개발 공부를 하기도 했죠. 본업이 바빠서, 취미 정도로만 생각해서 깊게 공부하지는 못했지만요.
5년 차 때 지방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때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죠. 홀로 떨어져 있었으니 주말부부 생활을 해야 했고,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일 말고는 할 게 없었어요. 그때까지도 돈 벌려면 참고 해야한다는 생각이 컸지만, 설상가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서 희망퇴직을 받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그렇게 힘들어지니까 이직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거예요.
“이 기회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
그때 아내가 회사를 옮길 거라면 좀 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어떻냐고 했어요. 바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죠. 지방에서는 퇴근하면 할 게 없으니 맨날 개발 공부를 했거든요. 어릴 적부터 제가 지녀왔던 프로그래밍에 대한 저의 관심은 아내도 알고 있었고, 갈수록 그 일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봐요.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였죠. 나이가 서른셋이고, 10년이 넘게 다른 공부, 일만 해왔는데 갑자기 새로운 시작이라뇨. 신입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요.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아내가 저를 계속 설득했어요. 돈 문제도 있고, 현실적인 여건도 안 좋아지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같이 뭔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아?”라고도 했어요. 아내가 웹 디자이너거든요. 제가 개발을 한다면 함께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그때, 패스트캠퍼스의 풀타임 교육 과정(SCHOOL)을 알게 됐어요. 3개월 동안 매일 희망하는 분야의 공부만을 할 수 있는 곳이었죠. 딱 저 같은 사람에게 맞는 과정이었어요. 커리어를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었고요.
수강 전에 진행했던 방문 상담이 기억이 나요. 그날이 퇴사 날이었는데, 담당이었던 홍지수 매니저님이 제 상황을 듣고는, 오히려 수강을 다시 한 번 고려해보라고 했어요. 제가 그때까지 쌓아왔던 경력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것,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입으로 취업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이유였죠.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수강을 유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패스트캠퍼스에 대한 믿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수강생을 진정으로 위한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결국 프론트엔드 개발 SCHOOL을 듣게 됐어요. 웹 디자이너인 아내의 영향 때문에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수업은 굉장히 좋았어요. ‘역량을 확실히 체득한다’라는 확실한 목표 하에 짜인 체계가 있었기에 제대로 노력만 한다면 개인의 목표도 이룰 수 있는 곳이었어요. 수강생들도 다들 열심히 하려는 분위기가 박혀있어서, 긴장도 늦추지 않을 수 있었고요.
매니저님의 밀착 관리도 한몫을 했어요. 한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제가 노트북에 커피를 쏟아서 먹통이 되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수업은 바로 따라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무척 난감했었죠. 그런데 매니저님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바로, 선뜻 개인 노트북을 빌려주신 거예요. 무엇보다 수강생의 학습은 방해되면 안 된다면서요. 모든 수업에 매니저가 참여해서 실시간으로 도움을 주시는데, 매니저님이 안 계셨다면은 그 정도로 수월하게 공부하긴 쉽지 않았을 거예요.
3개월의 공부가 끝나고 하이어링 데이가 다가왔어요. 하이어링 데이는 패스트캠퍼스 SCHOOL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행사로, 유수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3개월간 배운 것들을 선보이는 자리예요. 그 자리에서 바로 면접을 보죠. 감사하게도 친환경 유기농 식품 배송 서비스 ‘헬로네이처’의 인사담당자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3개월간 프론트엔드 개발 SCHOOL에서 알려준 대로 Daily Scrum을 꾸준히 쓰고, 사소한 결과물 하나하나 잘 기록하고 정리해 두었던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조금은 뒤늦은, 새로운 시작을 했어요.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기뻐했어요. 붙었을 때 원하는 거 뭐든지 다 사줄 테니 마음껏 고르라고 했죠. 솔직히 안 될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일은 재미있어요. 이전 직장과는 다르게 ‘자아실현을 하는 느낌’이 들어요. 뜻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무언가 이뤄내는 기분이랄까요. 확실히 사람에게는 ‘적성’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일은 일대로, 삶은 삶대로 생각했기에 놀거나 취미생활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지만, 이제는 일을 포함한 제 ‘생활’자체가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전과 다르게, 가슴이 뛰어요.
안정적인 일터도 좋지만, 즐겁지 않다면, 새로운 도전이 꼭 필요해요.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