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노쇼’에서 프로젝트를 망치는 빌런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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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 호날두가 공공의 적이 될 줄은 몰랐다. 그 많던 팬 중에서 누구 한 명도 제대로 변호하지 못할 만큼, 호날두와 유벤투스가 저지른 일들은 그야말로 기만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쯤 되면 화가 가라앉을 만도 하건만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는다. 아마 호날두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커다랬을 수도 있겠다. 혹은, 호날두의 모습에서 회사 프로젝트 진행마다 나타나던 “빌런”의 모습을 겹쳐 봤을지도 모르고.

??? : 사람들이 왜 저렇게 화가 났지?

 

1. 무리한 프로젝트 기획

유벤투스는 이날 오후 2시나 되어서야 전용기를 타고 입국했다. 이틀 전인 24일 중국 난징에서 인테르밀란(이탈리아)와 경기를 가졌기에 이동 거리는 길지 않았지만, 경기 당일 입국은 과하게 타이트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무리한 일정에 약속까지 어긴 유벤투스…팬들에겐 아쉬움만> 뉴시스, 2019.07.26

유벤투스는 지난 24일 난징에서의 프리시즌 매치 이후 베이징에서 이벤트 경기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베이징의 협조를 얻지 못했고, 대체 일정으로 급하게 찾은 것이 한국이었다. 갑작스럽게 잡힌 경기 준비 기간은 고작 한 달 남짓. 아무리 이벤트 성격의 매치라 할지라도 조율할 것은 적지 않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한국에서의 일정을 무리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부터 멸망을 향해 질주하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그 사람을 말려도 ‘사이즈가 나온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만으로 시작되고 만다. 시기, 업무의 맥락, 팀의 성격과 상관없이 시작된 프로젝트는 준비부터 실무까지 모두 곤란하고 어렵다.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을 똑바로 하게 해주세요… ©웹툰 ‘가우스전자

2. 일방적인 일정 번복

6만 명이 넘는 관중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한 유벤투스, 경기 시작 시간인 오후 8시를 넘겨 도착한 초유의 사태 이후 구단 관계자가 한 주장은 더 황당했습니다. 정식 경기 시간인 90분이 아닌 80분 경기를 하자고 연맹과 주최 측에 요청하며, 그렇지 않으면 뛰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유벤투스 ’80분 경기’ 갑질 논란…”안 뛰면 그만” 협박도> TV조선, 2019.07.29

갑자기 시작된 기획이 매끈할 리 없다. 결국 한국에 늦게 도착한 유벤투스는 무려 경기 시작 1시간이 경과해서야 상암에 도착했다. 이미 무례함의 끝을 보여줬지만 유벤투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전후반 각 40분씩 80분만 뛰겠다는 황당한 주장을 시작한 것이다. ‘90분간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축구를 모욕하는 발언이었지만 유벤투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위약금을 내고 경기를 취소한다는 협박까지 내세웠다.

호날두에 대한 애정 가득했던 팬들은 유벤투스의 일정 번복을 비교적 얌전히 감수했지만, 프로젝트는 그렇지 않다. 단순히 지연되는 것을 넘어 분명한 손해가 발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모든 변수를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일정 문제가 어찌 없겠는가. 다만 모든 일에는 사전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예의와 존중을 갖추자.

왜 뭐 어쩌라고요

 

3. 프로젝트 외적인 상황에 대한 언급

‘호날두 노쇼’ 사태로 한국 축구 팬들을 실망시킨 이탈리아 프로 축구 구단 유벤투스 측이 한국프로축구연맹의 항의에 반박하며 “유벤투스 버스에 경찰 에스코트가 제공되지 않아 경기장에 지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유벤투스 아넬리 회장은 “교통 체증이 심해 버스가 거의 2시간 동안 갇혀있었다”며 “전 세계에서 우리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축구클럽 유벤투스는 과연 ‘경찰 에스코트’ 대상일까> 스포츠경향, 2019.08.03

그래서 왜 늦었단 말인가? “우리 형”을 외치며 상암에 집결한 6만 관중의 유일한 궁금증에 유벤투스의 답변은 황당한 수준이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경찰의 에스코트가 없었기 때문에 늦었다는 말이었다. 애초에 입국이 늦지 않았으면 경기는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한 인정과 사과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과제에 참여한 사람을 묶는 것은 오직 프로젝트뿐이어야 한다. 그 외의 것들이 수상한 모양으로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최근 많은 회사에서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이나 회고 같은 문화가 대두되는 것 역시 프로젝트 이외의 요소를 평가에 개입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초등학생도 아니고 ‘교통사정’을 탓하다니, 정말 용서할 수가 없다. 너네가 일찍 나왔어야지.

쓰레기통에 버려진 호날두의 유니폼

 

4. 이기적인 커뮤니케이션

지난 26일 팀 K리그와의 친선경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은 “호날두가 뛰는 걸 그렇게 보고 싶으면 이탈리아로 오라. 내가 비행기값을 주겠다(Se lo vuoi vedere cosi tanto, ti pago il volo)”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분은 통역을 맡은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건너 뛰었지만, 이탈리아 현지 언론이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사리 감독이 이 같은 농담을 던졌다고 보도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호날두 보고싶으면 비행기표 줄게” 노쇼 논란에 기름 부은 농담> 이데일리, 2019.07.29

차라리 번역 실수라고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다. 서 있는 곳은 다르지만 Fino alla fine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구단 구호를 외치며 유벤투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머릿속에 떠올려서도 안되는 농담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은 상대와 나 사이의 교집합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사리 감독은 한국 팬들이 화난 이유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슬프게도 이런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꽤나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팀과 팀 사이에서 다른 쪽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어쨌거나 당신네가 실수한 것이 아니냐”라는 고성이 오간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하는 프로젝트에서 쓸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까지 모든 것을 농담처럼 여기는 사리 감독처럼.

사실 세 번도 모자라다

 

5. 매끄럽지 않은 AFTER

유벤투스(이탈리아)와 K리그 선발팀 간 친선전에 근육 문제를 이유로 끝내 출전하지 않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탈리아로 귀국한 뒤인 27일 저녁(한국시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기분 좋은 얼굴로 러닝머신을 뛰는 영상을 올렸다. `Nice to back home(집에 오니 좋다)`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남겼다.

<아프다더니…귀국 후 러닝머신 뛴 `멀쩡한 호날두`> 매일경제, 19.07.28

인성 넘치는 호날두가 그럴 리 없다. 뭔가 건강상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계약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 호날두를 사랑하던 팬들은 정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우리 형”을 변호했다. 이해한다 한순간에 식는 사랑이 어디 진정한 사랑이겠는가. 근육통으로 출전하지 않았다는 호날두가 더없이 밝은 모습으로 러닝머신만 타지 않았어도 이 짝사랑은 조금 더 오래 진행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프로젝트가 겨우 끝이 났다. 만나서 별로였고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사람 일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그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들과 다시금 관계하기 마련이다. 아쉽게 끝난 프로젝트일수록 이런 필요성은 더욱 크다. 프로젝트에서는 나눌 수 없었던 좋은 인상을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고, 매 프로젝트마다 원수를 만들어낸다. 마치 유벤투스와 호날두처럼.

잘가요 형. 정말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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