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인 조직은 무조건 좋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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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질서’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에 위계질서 문화가 깊이 박혀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학창시절부터 군대에 이르기까지 선, 후배 문화가 스며들어가 있는 사회를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들 대부분은 위계질서가 잘못됐다고 여기게 된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상사의 비효율적인 지시까지 따라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수직적인 조직 구조를 탓한다.

많은 기업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혁신이 없는 기업은 금방 도태되는 시대기 때문이다. 혁신의 핵심은 기업문화다. 그래서 기존의 관료적인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던 많은 회사들이 혁신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려 한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도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주인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직급 호칭을 없애고, 불 필요한 회의나 보고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직급이 아닌 능력을 중심으로 구조를 개편하여 과장이나 차장도 기존 부장 직급이 되어야만 맡을 수 있던 팀장이나 부서장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다들 위계질서는 사라지고,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업무를 볼 수 있는 조직을 추구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시도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온라인 의류 쇼핑몰 자포스다. 그들은 ‘홀라크라시(Holacracy)’를 도입했다. 홀라크라시는 ‘자율적이면서 자급자족적인 결합체’라는 의미의 ‘holachy’와 ‘통치’를 뜻하는 ‘cracy’가 합쳐진 말로, 조직의 위계질서를 완전히 파괴한 형태다. 팀 단위로 운영되며 모든 직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책임을 지고 일한다. 홀라크라시에는 기존 조직의 부서와 비슷한 개념의 ‘서클’이 있는데, 각 서클 구성원들의 직위는 모두 같고, 상하 개념도 없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동등한 목소리를 낸다. ‘조직 파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파격적인 시도였다.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수평적인 문화를 좇고자 하는 경영자라면 자포스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방향으로 가장 극단적인 변화를 시도했던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보와 결과를 본다면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tech.co

 

홀라크라시 도입 이후, 자포스는 1,5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의 직위를 없앴다. 회사 내 계층 구조는 완전히 사라졌고 모든 직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도입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포스는 여전히 진통에 시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실패한 시도’라는 평가까지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조직 내 혼란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는 홀라크라시를 시행하며 이 같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직원에게 퇴직 장려금을 줄 테니 회사를 떠나라고 했다. 그 결과 약 20%의 직원이 자포스를 떠났다. 게다가 대부분이 수직적 조직문화에 익숙한 관리자급의 숙련된 직원이었다. 과도하게 파격적인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 또한 높은 지위와 명예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니 직위를 없애면 성과를 냈을 때 받을 보상이 사라지며 동기부여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주인의식을 고취시켜 높은 동기 유발을 추구했던’ 홀라크라시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2. 직원들은 책임 지길 원하지 않는다

홀라크라시 체제하에서의 자포스는 보스를 없애는 대신, 구성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진 리더가 되길 바랐다. 직급 때문에 제한받는 영역이 없는 만큼 누구나 팀장급의 책임을 지니게 됐다. 하지만 일부 주니어 사원들에게 있어 리더가 가지고 있던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는 것은 부담되고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많은 조직원들이 본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책임을 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지위를 내려놓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과도한 권한을 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3. 암묵적인 서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집단에서도, 설령 매니저를 두는 것을 금지한 홀라크라시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생긴다. 겉으로 보기에만 없을 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의 결정을 따른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면 문제는 커진다. 제도적으로 리더를 두지 않기에 한 명의 사람이 자신의 판단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지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한 명의 목소리가 가장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뚜렷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당연히 매끄러운 판단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4. 지연되는 의사결정

민첩하고 유연한 대처를 위해 도입한 홀라크라시였지만, 오히려 미팅이 많아지고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현상을 보였다. 분명 관료제 조직에 있었던 불필요한 보고나 절차가 없어졌기에 그 면에서는 시간이 절약됐다. 하지만 책임을 안고 있는 구성원이 자신의 판단으로만 결정을 내려야 하니 시간이 지체되는 현상을 보였다. 모든 것이 본인의 책임으로 귀결되니 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동등한 위치에 있는 팀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미팅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졌다. 상사가 없으니 그저 ‘믿고 따를’ 판단도 없어진 것이다. 결정에 관여하는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시간은 더 많이 걸리기 마련이다.
자포스의 홀라크라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지켜보자’라는 여론이다. 토니 셰이 또한 이러한 진통에 대해 “새로운 조직문화로의 이행에는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큰 규모의 기업에 엄청나게 파격적인 변화를 꾀한 만큼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포스가 겪은 진통이다. 위계질서 폐지를 추구하는 경영자라면, 그 변화를 꾀하는데 있어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기존의 위계질서와 수직적 조직문화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비합리성과 비효율을 불러오고, 회사의 비전을 해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경직된 관료적 조직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기존 조직구조에 대한 ‘반감’ 때문에 철저한 고민 없이 극단적인 수평 구조를 가지고자 한다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누군가에겐 익숙해진 질서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불편할 수 있고, 리더가 권한을 내려놓는 것만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을 부여받는 것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조직문화를 개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회사에 모든 상사가 사라진 모습을 상상해보자. 과연 구성원들은 그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제도적으로 탈이 생길 우려는 없는지, 준비가 안 됐다면 어떤 부분부터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갈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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