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브랜드 가치 – 에르메스(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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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사는 도시에서는 이름이 그 사람을 말해주지만, 도시 밖에서는 입고 있는 옷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과 들고 있는 가방, 신고 있는 신발, 스카프, 안경, 시계를 보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우리가 걸치고 있는 모든 것은 곧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표현하는 매체가 된다.

1997년 이래 2만 5천 가지 디자인으로 출시된 에르메스 스카프를 소개하는 홈페이지 (http://korea.hermes.com/la-maison-des-carres.html?___store=k.ko)

옷은 입는 사람의 취향과 안목을 담고 있으며, 취향과 안목은 그 사람의 나이, 살아온 문화, 경제력과 같은 사회적 위치를 반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입은 옷의 브랜드와 스스로를 동일시하곤 한다. 아이덴티티가 확고한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즐겨 착용하는 것은 곧 브랜드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해 드러내는 것과 같다. 1970년대 영국의 펑크족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반항적인 티셔츠를 입었고, 월스트리트 금융전문가들은 아르마니 수트를 즐겨 입는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는 ‘사회지도층’ 김주원(현빈)이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명품이라고 과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럽의 장인들이 생산하는 핸드메이드 명품 브랜드가 사회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투입되는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이에 담긴 정성과 노력을 곧 스스로의 가치이자 정체성으로 치환한다. 에르메스는 이 ‘장인의 한 땀 한 땀’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파리의 에르메스 본사 사옥 (출처: http://mixtemagazine.ca)

에르메스를 비롯해 파리의 하이패션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창립 설화’를 가지고 있다. 오트쿠튀르 의상실에서 시작된 대부분의 브랜드들과 달리 에르메스는 원래 마구용품과 안장을 만드는 공방에서 출발했다. 이후 마차의 역할을 자동차가 대체하면서 가방과 지갑 같은 가죽제품을 중심으로 부티크를 열며 사업을 전환했지만, 공방에서 장인들이 손수 가죽을 다루고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생산방식은 그대로 유지했다.

마차 앞에서 고객을 기다리는 마부의 모습을 형상화한 에르메스의 로고는 이러한 브랜드 히스토리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에르메스가 제품을 통해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이기도 하다. 마차에 고객을 태우고 말을 모는 숙련된 마부와 같이, 에르메스 공방의 장인들은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정성과 노력을 발휘한다. 에르메스의 아이덴티티는 이러한 장인정신을 토대로 세워졌다.

1945년부터 사용되고 있는 에르메스 로고

에르메스가 스스로 ‘럭셔리(사치품)’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에르메스 제품들이 오랜 세월 유지해온 품질과 품격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명품 브랜드보다 0이 하나 더 붙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180년째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에르메스가 ‘정성’을 판매한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아주 진부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는 에르메스가 그만큼 근본적인 부분에서 브랜드 철학을 정립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르메스 공방의 장인 (출처: http://mixtemagazine.ca / http://www.1961.fr/ )

2차 산업혁명과 지구화가 시작된 이후, 대량생산과 분업화는 효율적인 생산을 위한 양식을 넘어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이에 따라 장인체제를 고수하던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생산가격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일부 공정을 이전했지만 에르메스는 여전히 전과정에서 장인제 생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2013년까지 에르메스의 CEO를 지낸 패트릭 토마스가 늘 강조했던 바대로 에르메스는 장인의 경험과 연륜을 믿고 존중한다. 장인정신과 창조적인 디자인, 그리고 에르메스 고유의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에르메스의 제품 속에는 기계가 아닌 사람의 따뜻한 손길과 숨결이 스며들어 있고, 이 온기는 에르메스라는 브랜드가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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