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updated on 1월 25th, 2021 at 06:12 오후
브랜드 디자인은 ‘구조’ 안에서 지속될 수 있다. – 무인양품(무지, MUJI)
무인양품(無印良品)은 ‘도장이 찍혀있지 않은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인양품(무지, MUJI)은 ‘브랜드는 없지만 품질은 좋은 상품’을 만든다. 물건만 보면 이것이 무인양품 제품이란 걸 알 수 없을 만큼 로고는 물론이고 특정 브랜드임을 알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밋밋하고 간결한 디자인을 보면 무인양품의 제품이란 걸 알 수 있을 만큼 ‘브랜드가 없다’라는 사실 그 자체가 그들의 브랜드가 되었다.
특별한 것이 없고 단순한 그들의 디자인, 하지만 모든 것을 비워낸 듯한 그 간결함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별함이 없기에 특별한 무인양품의 역설, 그 강력한 힘의 중심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브랜드 메세지가 있다. 그리고 그 메세지를 담은 무인양품의 모든 디자인, 상품, 서비스가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구조’가 있었다.
1980년, 일본은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온갖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제품이 넘쳐났다. 모든 재화가 앞다투어 화려한 디자인을 품은 채 세상에 나왔다. 무인양품은 그 해에 다른 브랜드들과 정 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일본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유’의 자체 브랜드로 시작한 그들은 ‘제품 그 자체’의 본질에 집중했다. 그 기능과 역할과 상관이 없는 생산 프로세스와 그저 돋보이기 위한 디자인과 패키징은 최대한 간소화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생략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전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이유 있는 저렴함’을 내세웠다. 1988년 세이유에서 독립해 ‘양품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작을 한 무인양품은 해외에도 진출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도 성공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불경기에도 무인양품은 단 한 번의 적자도 내지 않으며 계속 성장했다.
그러던 2001년, 위기가 찾아왔다. 셀렉트숍과 SPA 브랜드가 급성장하면서 무인양품을 위협한 것이다. 그 결과 무인양품은 무려 38억 엔의 적자를 내며 휘청였다. 하지만 그때 ‘마쓰이 타다미쓰’가 사장으로 취임하고,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디자인의 수장이 되며 쓰러져가던 무인양품을 일으켜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가 아는 무인양품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1995년 기업공개(IPO) 뒤 ‘무인양품다움’을 잃었다. 매출과 이익이 늘면서 현실에 안주하고 조직이 경직화됐다. 90년대 초만 해도 무인양품 제품 담당자는 일본 산간지역을 샅샅이 돌며 소재를 찾곤 했으나 그런 열정이 사라졌다. 임직원들 간에 편 가르기와 줄 서기 등 사내정치도 횡행했다.” – 무인양품,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숍 대명사가 됐나 (2015.01.23, 비즈니스 포스트)
“이것으로 좋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젊은이에게 맞는 테이블’이나 ‘나이 든 커플의 침실에서 사용하는 테이블’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으로 다양한 생활환경에서 조정되고, 어떤 수준의 삶이든 어울리는 테이블을 만든다. 이것이 무인양품이 보는 디자인의 우수성이다.” – 하라 켄야
그들만의 확고한 아이덴티티와 신념, 철학으로 다시 정신무장을 했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그렇지 않다. 마쓰이 회장은 ‘무지 다움’을 잃은 무인양품의 뱃머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새로운 브랜드 컨셉’을 통해 이루었지만 그 길로 더 힘차게,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 흔들렸던 무인양품이기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도 견고한 발전을 이루길 원했다. 그때 제시된 것이 ‘기준’과 ‘가이드’였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환경이 바뀌어도 그들이 다시 세운 브랜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마쓰이 회장은 매장을 내기 전 매출을 예상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출점 기준서’를 만들었다. 매장 접근성부터 크기, 주차장의 넓이 등을 모두 점수로 산출하여 평가해 점포의 성공성을 측정하는 것이다. 또한 ‘무지그램’이라는 메뉴얼을 만들어 인사법부터 물건을 건네는 방법, 잔돈을 주고받는 방법, 상품 진열법까지 그야말로 무지 매장 운영의 모든 것을 담았다. 어느 무지 매장에서라도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숙련된 직원이 나가더라도 업무 공백 또한 거의 없도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인양품의 철학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디자이너로 구성된 ‘고문 위원단’과 끊임없이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해 상품 개발에 있어 시장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옵저베이션’시스템도 갖췄다.
의아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저 ‘철저한 메뉴얼과 가이드’를 따른다면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창의적인 발상에서 그들만의 색을 정립한 무인양품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쓰이 회장은 그의 저서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지의 메뉴얼은 한 번 만든다고 그대로 고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보완,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직원들이 참여해 아이디어를 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2만 건의 메뉴얼 개선 제안 요청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의미가 큰 부분이다. 무인양품은 구성원들이 ‘직접’ 메뉴얼을 수정하고 보완하게 함으로써 그들만의 비전과 브랜드 메세지가 녹아든 가이드를 유지할 수 있었다.
40개의 품목으로 출발한 무인양품은 이제 7,000여 개의 품목을 판매하며, 세계 23개국에 200여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도 14곳의 매장이 있다. 쓰러질뻔했던 무인양품을 일으켜 세운 것은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된 브랜딩 메세지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그 메세지를 그대로 담은 그들만의 특별한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그저 그 생각에서 멈췄다면 계속 몸집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한번 더 미끄러졌을 수도 있었다. 한번 정한 브랜딩 메세지를 그대로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을 갖췄더라도, 독특한 메세지를 담았더라도,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우직한 힘이 필요하다. 하라 켄야는 무인양품의 메세지를 제품에 담아내는데 탁월했고, 마쓰이 회장은 무인양품이 흔들리지 않고 나가게 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았다. 생각의 전환은 큰 키를 돌리는 역할을 했지만, 그곳으로 힘차게 나아가게 한 것은 ‘구조’였다.
참고/출처 ▼
MUJI 온라인 스토어
월간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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