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마블이 조직문화 개선안을 내놨다. 야근, 주말 근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물론, 탄력 근무 제도를 도입하고 퇴근 후 메신저로 업무를 지시하는 것도 금지한다고 했다. 구로 본사의 불빛이 꺼지지 않아 ‘구로의 등대’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과도한 업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넷마블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발표는 한층 더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론은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그들의 행보에 박수 쳐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보여주기 식일 뿐이다.”, “갑자기 그렇게 줄이면 밀리게 될 업무는 어떻게 하냐”등의 실무자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쩌면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오랜 시간 관행처럼 박혀왔던 습성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원이 자살하는 등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던 시기였기에 그들의 조직 문화 개선 발표는 어딘가 급하고 준비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이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을 발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역시 대한민국의 복지 제도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나 앞길이 기대된다는 말이 대다수였다. 넷마블에 대한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저 넷마블은 쉽게 변할 수 없는 대기업인데 반해 배달의 민족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로고 이미지: 넷마블, 우아한형제들
야근을 하지 않는 회사는 어떤 조직일까. 그저 직원들의 복지가 좋고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회사일까? 물론 맞지만, ‘야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전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정시 퇴근을 한다는 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주어진 일을 다 해냈다는 뜻이다. 이는 엄청난 능력이다. 단지 열심히 한다고 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분석하고, 철저한 계획을 짠 후 일에 몰입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하루 일을 끝마치지 않은 채 퇴근하는 것은 조퇴에 불과하다. 회사는 끊임없이 매출을 내서 이익을 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직원으로서도 이를 간과하는 것은 본연의 목적을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칼퇴근은 개인의 역량에 기인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 그런 측면도 있다. 보다 거시적으로 업무를 바라보고, 스스로 효과적인 계획을 세워 착착 처리해나가는 사람은 남들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일을 끝마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조직 문화적 요인이 더 크다. 주변만 둘러봐도 직장의 분위기, 상사의 눈치 등, 업무와는 상관없는 이유 때문에 퇴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앞서 밝혔듯이 정시 퇴근이 가능하다는 것은 업무 효율이 좋다는 뜻이다. 뒤집어보면 매일같이 야근을 한다는 것은 업무 효율이 나쁘다는 반증이다. 그렇다 보니 악순환이 계속된다. 정해진 시간 동안만 일을 해서는 나쁜 효율 때문에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당연히 일을 더 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것이 굳어지며 관리자에게는 야근을 하는 것이 곧 일을 잘 하고 있다는 안심으로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조직 전체적으로 야근을 당연시하는 풍토나 일찍 퇴근하려는 부하직원에게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생성된다.
결국 조직 문화 차원에서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면 다들 일은 늦게까지 하는데 그만큼의 성과는 못 내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회사에 붙어있게 함으로써 원하는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한 ‘꼰대 문화’가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야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같이 야근을 한다면 비효율에 묶여있는 것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배달의 민족은 월요일에는 오후에 출근하는 주 4.5일제부터 한 시간 반이나 주어지는 점심시간, 가족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는 4시 퇴근을 허락하는 등, 한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복지 제도를 이전부터 시행해왔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 35시간 근무제를 발표하며 덧붙인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업계 1위 유지, 3년 동안 연평균 약 70% 성장, 소폭이지만 흑자전환, 신규 사업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등 여러 성과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이런 제도들이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트리지 않는다는 구성원들에 대한 믿음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본 것입니다.” – 김봉진 대표 페이스북
가끔씩 일도 널널하게, 놀면서 하는 것 같은 오해를 받을 정도로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연일 내놓는 그들이 사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스타트업이다. 게다가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일이 널널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일과 삶의 균형과 성장 두 가지를 모두 잡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아한형제들은 ‘정시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것’ 자체를 문제로 인식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 것의 이면에는 비효율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직원들이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해결하려 했다. 회사가 처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직원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고, 리더십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비효율은 하나둘씩 제거되었고, 갈수록 업무 시간 안에 일을 끝마치고 퇴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성장을 위해 비효율을 제거하니 자연스럽게 정시 퇴근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렇게 생긴 여유에서 한 시간 반의 점심시간, 기념일 4시 퇴근, 나아가 주 35시간 근무라는 좋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구성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책임감, 열정까지 북돋아 줄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겉모습을 지니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에게는 끊임없이 좋은 인재들이 몰렸다.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일찌감치 이해했던 것이다.
많은 회사들이 복지가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복지를 회사의 운영이나 성장과는 무관하게, 그저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서, 혹은 인재를 잡아두길 위한 방편으로 생각해 뒷전으로 두고 있다. 틀린 생각이다. 성장을 위해 비효율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회사는 숨 돌릴 틈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면 보여주기 위한 억지 복지가 아닌 진짜 복지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필요 이상으로 긴 미팅을 제거하며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이 복지다.
넷마블의 야근 철폐 발표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로의 등대’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와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만약 넷마블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무실의 불을 꺼 버린다거나 하는,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적절한 복지가 이루어질 수 없다. “현실도 모르면서 이미지만 개선하려고 한다.”라는 내, 외부의 목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비효율을 개선하는 것이 곧 성장을 불러오는 길이며 복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 시스템, 직원들의 역량 등에 대해 철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며 어려운 작업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이전부터 차근차근 이를 이루기 위해 힘써왔다. 그래서 그들은 박수를 받는다.
넷마블이 여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들이 발표한 파격적인 복지 정책은 그저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나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곳곳에 숨어있던 비효율을 불러오는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는 행동이 모두 진행된 뒤에 나온 발표이길 바란다.
글 : Editor 정두현 (dhchung@fastcamp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