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updated on 4월 28th, 2021 at 02:07 오후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말로만?
지난 7월, 쇼핑몰 무신사는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랐다는 문구를 담은 게시글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끔찍함을 떠올렸고, 동시에 무신사의 가벼움에 분노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콘텐츠가 발행된 지 수시간 만에 불매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무신사는 바로 사과문을 올렸다. ‘무엇보다 해당 사건이 가지는 엄중한 역사적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 드린다’는 말이었다.
최근에 반복되는 ‘사과문’과 다를 것 없는 문장들이었고 그만큼 정석에 가까운 뻔한 글이었다. 하지만 무신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추가로 선보인다.
우선 EBS 최태성 강사를 빠르게 초청하여 담당자와 및 무신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역사 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며칠 뒤 무신사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에 방문하여 분명한 재발방지를 약속한 것이다.
근래 보기 드문 눈에 보이는 분명한 조치였으며, 보기 드문 상세하고 깊은 사과였다. 최근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인 ‘임블리’가 있어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애초에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잘못은 누구나 한다. 문제는 미안함을 전하는 것과 그 방식이다. 그렇다면 좋은 사과문은 무엇일까?
사회과학 이론을 기업 경영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접목시키는 연구를 선보이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오토 러빈저 교수(미국 보스턴대)는 그의 저서 <위기 관리자 The Crisis Manager>에서 사과에 필요한 몇 가지 요소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여기에 따르면 최근 ‘임블리’가 보인 행보는 최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는가?
지난 몇 개월 전 부터 임블리는 사과할 일이 참 많았다. 화장품을 사용한 뒤에 접촉성 피부염을 호소하는 고객이 생기는가 하면, 옷에서는 물빠짐과 이염이 발생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CS는 불성실했다.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커녕 피드백을 요구하는 글을 숨기면서 관련 게시글에 명예훼손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임블리 쇼핑몰에서 판매한 호박즙 제품에서 곰팡이가 발생되는 일이 발생한다.
둘째. 사건 발생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밝혔는가?
임블리의 꽉 막힌 소통에 기름을 부은 것은 호박즙에 생겨난 곰팡이었다. 음식물에 생겨날 수 있는 최악의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임블리 임지현 상무의 사과는 허무했다. “호박즙을 생산하는 스파우트 파우치의 입구를 기계가 잠그는 과정 중에 덜 잠기는 경우가 수십만건 중 한 두건 정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추가적인 피드백을 요구했지만 임블리 측은 “제조사의 공문과 내용증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사건의 책임을 협력사로 돌리면서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은 태도에 여론은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셋째. 죄송함과 미안함의 표현이 명확한가?
사건 이후 최초로 올라온 사과문에서 임블리 임지현 상무는 “고객님들은 점점 실망과 함께 떠나고 한때 VVIP던 고객님은 대표적인 안티 계정을 운영한다”고 토로하며 “회사 매출은 급격히 줄어 생존을 걱정해야 하며 직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뒷수습에 지쳐간다”는 말로 사과문을 시작했다.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지키며 성의있는 피드백을 기다리던 고객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악의 대처였다. 죄송함과 미안함은 커녕 책임을 지겠다는 성의를 찾아볼 수 없는 사과문에 고객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결국 다음 날 임지현 상무는 해당 문구를 삭제하기에 이른다.
넷째. 사과가 신속하게 준비되었는가?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은 1월 8일 제품을 구매해 3월 8일 이물질을 발견하고 상담원과 연락 후 반품을 요구했지만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연락 한 번 받지 못했다.
심지어 임블리의 사과문 답지 않은 “사과”는 4월 4일에야 올라왔다. 이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여기에 기자회견에는 임지현 상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간 올라온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하는 결과였다.
참고로 임블리를 운영하는 부건에프엔씨는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으로 소비자 A씨에 대한 고소를 지난 7월 26일 진행했다. 이는 지난 달 임블리 안티계정 ‘임블리쏘리’ 계정주인 김모씨를 이후 두 번째 고소이다.
사과를 할거면 정말 확실하게 해야지
임블리와는 반대로 신속한 대응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모범이 될만한 행보를 보이는 곳도 있다.지난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건으로 대학생들이 매몰되었고, 최종적으로 10명의 사망자와 20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건물의 소유 및 관리를 맡고 있는 코오롱은 2월 17일 밤 발생한 사건에 대해 2월 19일 조간 신문 1면에 사과 광고를 일제히 게재해 신속히 사과했다.
내용도 가볍지 않았다. ‘코오롱그룹 회장 이웅열 및 임직원 일동’이라고 주체를 명확히 밝혔고, 사과 대상을 분명히 하는 내용을 네 번에 걸쳐 게시되었다.
동시에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조치와 후속 조치도 잇따랐다. 유가족에게 1인당 최소 6억원 상당의 보상을 지급되었으며, 체육관 설계 담당자 및 리조트 관계자 등 모두 13명에게는 징역 및 금고형이 선고되었다.
그 어떤 후속조치로도 덮을 수 없는 슬픔이지만, 적어도 유가족의 가슴에 다시 비수를 꽂는 일은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수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사건이 일어나지 전까지는 말이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많아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모두가 공평한 위기 앞에서, 기왕이면 제대로 사과하는 준비를 하자. 실제로 일이 터진다면 이런 평범한 생각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어질 것이 분명할테니 말이다. 이를테면 임블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