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레전드 디자이너에게 듣는 실리콘밸리
디자인: 조너선 아이브 인터뷰
패트릭 콜리슨:
오늘 이 인터뷰가 정말 기대됩니다. 실리콘밸리, 아니 기술 산업 전반을 통틀어 소개가 거의 필요 없는 분이 계시죠, 게다가 이분은 성까지도 생략해도 다 아는 분이에요. 정말 대단하죠. 자, 무대 위로 레전드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님을 모시겠습니다!
조니 아이브: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영광스럽습니다. 패트릭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에요. 진심으로 고마워요.
패트릭:
일단 당연한 질문부터 시작할게요. 혹시 행사장을 직접 둘러볼 시간은 없으셨겠지만, 백스테이지에서 모니터는 보셨을 것 같아요. 지금 무대에서 보고 계신데, 디자이너 로서 이곳의 디자인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조니:
아주 아름다워요, 그렇죠? 제가 여기 온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 예전에 이곳에서 강렬하고 생생한 기억이 있어서요. 근데 오늘 공간 디자인은 정말 멋지네요.
패트릭:
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참석한 기술 행사는 WWDC였어요. 아마 2005년쯤이었던 것 같은데, 조니가 디자인에 참여했던 행사였죠. 장소도 아마 여기 모스코니 센터였던 것 같고요. 그때 존(패트릭의 동생)은 본관에 들어갔는데, 저는 넘치는 인원을 위한 보조 관람실로 보내졌어요. 그건 제 잘못은 아니에요! (웃음) 조니, 1992년에 실리콘밸리에 처음 오셨죠?
조니:
네, 맞아요.
디자이너가 겪은 실리콘밸리의 변화
패트릭:
아직도 젊으시지만, 그게 벌써 몇십 년 전 일이네요. Alan Kay라는 컴퓨터 과학자는 이런 말을 했어요. “소프트웨어 산업은 일종의 대중문화다. 과거의 역사와 아이디어를 잘 알지 못한 채, 그냥 새롭다고 여기는 것들만 반복한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기술 업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그런 현상이 늘 흥미로웠어요. 조니는 디자이너 로 시작해서 이제 33년 넘게 실리콘밸리를 관찰해 오셨잖아요. 그 시간 동안 여기는 어떻게 변했다고 느끼세요?
조니:
제가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할 때였어요. 런던에서 태어나서 북동부에서 공부했는데, 마지막 학년에 처음 매킨토시(Mac)를 만났어요. 아쉽게도 좀 늦게 알았죠. 그런데 그때 정말 강렬한 깨달음이 있었어요. “우리가 만드는 것이 곧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우리가 만든 것엔 우리의 가치관, 관심사, 몰두하는 것들이 다 담겨 있죠.
그리고 그걸 Mac에서 정말 강하게 느꼈어요. 처음엔 퍼즐 같은 느낌이었지만, 갈수록 명확해졌죠. “이건 단지 기술 제품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에 몰두한 창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구나.” 보통 제품은 일정 가격에 맞춰, 일정 시점에 출시되고, 그저 기능만 맞추는 방식으로 설계돼요. 하지만 Mac은 그렇지 않았어요. “이건 인류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설계된 거야.” 그걸 강하게 느꼈죠.
저는 공학을 전공한 게 아니라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그런데도 이 제품에 담긴 가치, 용기, 철학에 감동했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직접 만나보고 싶었어요. 졸업 후인 1989년에 처음 미국에 왔는데요, 학교 다닐 때 스폰서 회사가 있어서 바로 런던으로 복귀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저한텐 자유로웠어요.
저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일자리를 얻으려고 누군가를 만나야 했다면, 아마 못 만났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뭔가를 ‘요구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사람들도 편하게 저를 만나줬고, 저도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1989년부터 실리콘밸리를 보게 되었고,1992년에 애플로 가게 됐어요. 그전엔 컨설팅 형태로 일하다가, 결국 애플로 옮기게 된 거죠. 제가 그때 느꼈던 건, 일종의 순수한 열정이었어요.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인류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명확한 목적 아래, 모여 있었죠. 소규모 그룹이든 대규모 그룹이든, 분위기는 같았어요. “우리는 인류를 돕기 위해 여기 있다.” 그런 헌신적인 정신이 느껴졌어요.
패트릭:
그게 애플 내부에서 느낀 분위기였어요? 아니면 실리콘밸리 전반에?
조니:
솔직히 말해서요, 모두 그랬어요. 비록 경쟁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리는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같다고 말하긴 어렵겠네요.
디자이너가 보는 실리콘밸리 가치의 변질
조니 아이브:
지금은, 솔직히 예전과는 좀 다르다고 느껴요. 이제는 곳곳에 기업의 목적, 권력, 돈 같은 게 중심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조금 날카롭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게 사실이에요. 디자이너 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는지는 처음에 잘 보이지 않아요. 대개 변화는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잖아요. 한 걸음씩, 작은 선택이 쌓여서 결국 멀리까지 오게 되죠. 근데 만약 지금과 1992년을 딱 비교해 본다면, 그 차이는 꽤 뚜렷할 거예요.
패트릭 콜리슨:
그럼 요즘 소프트웨어를 만들거나, 제품을 만들거나, 회사를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겐 어떤 ‘중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날 기술이 왜 어긋나게 되었을까요? 혹시 ‘목적 의식’이 사라져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봉사하는 자세’ 같은 게 빠진 걸까요?
조니 아이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디자이너 든 창업가든 일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가치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요. 그리고 우리가 이 모든 기술과 창작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명확히 이해해야 해요. 우리는 결국 사람을 돕고, 영감을 주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방금 전에 패트릭과도 이야기했지만, 우린 모두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제 직업이 디자이너 를 넘어 ‘toolmaker(제작자)’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그게 결국 ‘혁신’이란 걸 가능하게 하죠. 그런데 요즘은 혁신이라는 단어가 자주 오해되는 것 같아요. 단지 뭔가를 ‘다르게 만든다’거나 ‘무조건 부순다’고 해서 혁신이라고 착각하거든요. 저는 그냥 부수는 것에는 관심 없어요. 그건 혼란만 남기고 가는 일이에요. 하지만 정말 더 나은 걸 만들기 위한 결과로 어떤 게 ‘부서질 수도 있다’면, 그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진짜 혁신은 의도, 비전, 신념이 모여야 가능해요.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자신을 넘어서서, 모두와 나눌 수 있어야 하죠.
패트릭:
예전에 저랑 이야기하면서, “진심으로 인류를 진보시키고 싶다”는 말을 하신 적 있어요.
조니 아이브:
맞아요. 그 말을 할 때는 진심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일요일 오후에, 정말 사소한 포장 박스 디테일에 대해 고민했던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케이블이 어떻게 감겨서 포장돼야 사람들이 더 편하게 뺄 수 있을까 하는 거요. 엄청 사소해 보이지만, 그걸 잘 설계하면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매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요.
근데 그걸 단순히 “5초를 아끼자” 같은 효율성 문제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게는 그걸 푸는 과정이 ‘영적인 경험’ 같았어요. 왜냐하면, 누군가 그 케이블을 열면서 “아, 누가 나를 정말로 신경 썼구나”라고 느끼게 되잖아요. 그 감정이 바로 영적인 거예요. 저는 언제나 이걸 사랑과 배려의 관점에서 생각해요. 그 제품을 쓰는 사람과 저는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 제품을 통해 우리는 연결되는 거죠. 스티브 잡스도 이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우리가 만든 제품을 통해, 우리가 받은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요. 그 말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패트릭:
조니가 애플에서 디자이너 로서 구현한 디자인은 종종 미니멀하고 단순하다는 평가를 받아요. 하지만 그 안에는 뭔가 유쾌함이나 기쁨도 함께 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iMac의 독특한 색상들, Pixar 램프 같은 형태, 그리고 아주 엉뚱하게도 iPod에 양말(socks)을 입히기도 했잖아요! ‘디자인에서 기쁨’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조니:
와, 그건 정말 좋은 질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단순함 = 군더더기 없음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영혼 없는 제품이 나와요.
제 생각에 진정한 단순함은 어떤 사물의 본질과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실리콘밸리나 이 업계 전반에 ‘기쁨’과 ‘유머’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그게 늘 마음에 걸렸어요.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정말 복잡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기쁨’을 ‘사소함’이나 ‘유치함’으로 오해하죠.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어떤 ‘마음 상태’로 일하는지가 그 제품에도 그대로 담겨요. 제가 불안하고 초조하면, 제품도 그렇게 느껴지게 돼요. 그래서 기대감, 낙관, 기쁨을 가지고 일하고, 그걸 팀원들에게도 나눌 수 있어야
결국 그런 분위기가 제품에 스며들어요.
디자이너가 숫자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패트릭 콜리슨:
조니, 방금 말씀하신 내용에서 또 연결되는 게 있는데요. 예전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기업에서 제품을 만들다 보면, 팀원들 간의 대화에서 숫자로 측정 가능한 항목들—예를 들면 스케줄, 예산, 속도, 무게 등—만이 주된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왜냐면 숫자는 측정이 쉽고, 누구나 동의하기 쉬우니까요. 그런데 디자이너 들이 기여하는 많은 부분은 그렇게 숫자로 쉽게 나타낼 수 없는 거잖아요?
조니 아이브:
맞아요, 그 부분이 진짜 핵심이에요. 처음엔 이게 굉장히 저를 짜증나게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숫자로만 설명되는 속성에만 관심을 가지는 걸 보고 “이게 전부야?”라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나중에 가서야, 조금 더 관대하게 해석해보기로 했어요. 왜냐면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한 거거든요.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공감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측정이 쉬운 것들에 집중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가장 위험한 거짓말이 생겨나요. 그게 뭐냐면,
“우리가 측정 가능한 것만 이야기하니까,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착각이에요. 그건 거짓이에요. 물론 그런 속성들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나 크리에이티브 팀이 기여하는 건 측정할 수 없는 감정, 즐거움, 깊이, 의미 같은 것이죠.
조니:
제가 정말 바라는 건 이거예요.
“의견(opinion)”이 “아이디어(idea)”랑 같지 않다는 걸 사람들이 깨닫는 거예요. 예를 들어, 수술을 앞둔 심장외과 의사에게 “그건 당신 의견이잖아요?”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수술하려고 드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말이 안 되잖아요. (웃음) 디자이너들의 직감, 미적 감각, 반복된 실험에서 나온 판단은 그냥 “의견”이라고 퉁치기엔 너무나 중요하고, 실제적이고, 깊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진짜 무서운 건요, 조용한 사람이 낸 아이디어를 놓쳐버릴 때예요. 왜냐면 그 아이디어가 들리지 않아서 사라지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팀워크 안에서 “진심으로 듣는 문화”를 만드는 걸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요. 팀원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관심을 갖고, 서로를 위해 뭔가를 만들어주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해요. 예를 들어, 제가 애플에서 시도해본 것 중 정말 효과 있었던 게 있어요. 매주 금요일 아침, 디자인 팀원 중 한 명이 전 팀원에게 아침을 만들어주는 거였어요. 다 함께 돌아가면서 말이에요. 이게 단순한 아침식사가 아니라, 서로를 위한 ‘작은 제작 행위’였던 거죠.
아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만들어줘요. “내가 뭘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고 그게 우리 팀 문화를 훨씬 따뜻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줬어요.
패트릭:
그런 방식, 너무 멋져요. Paul Graham은 “Make things people want(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라)”라고 했는데, 조니는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라”고 말하네요.
조니:
맞아요. 우리 모두 결국엔 ‘다른 사람을 위한 창작’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게 디자인의 본질이고, 그걸 작은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게 팀 전체의 에너지와 분위기를 바꿔줘요.

속도 vs 품질, 디자이너에게 뭐가 더 중요할까
패트릭 콜리슨:
그럼 이제 실무 이야기로 조금 넘어가볼게요. ‘속도와 품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조니는 이 딜레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니 :
(웃음) 저는…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싫어요. “둘 다 가능하다”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이에요. 사실 속도와 품질을 함께 가져가는 건 어렵긴 해요. 예산, 시간, 품질,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긴 정말 쉽지 않죠. 하지만… 저는 그걸 ‘동기부여의 문제’로 보고 싶어요. 우리가 정말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결국 속도도 높아지고 품질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우리가 어떤 단어를 쓰느냐예요. 어떤 언어로 문제를 규정하느냐가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든요. 그래서 저는 “속도냐, 품질이냐?” 대신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하면서도 아름다운 퀄리티를 낼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바꿔요. 그게 훨씬 건강한 접근이니까요.
패트릭:
회사 규모가 커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잖아요. 초창기에는 팀이 작고 내가 모든 걸 다 직접 챙길 수 있어요. 근데 팀이 커지면, 내가 전혀 몰랐던 의사결정이 벌어지기도 하죠. “이건 내 취향이 아닌데…” 싶은 일이 생기고요. 조니도 그런 상황을 많이 겪으셨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조니:
아, 그건 정말 어려운 문제죠. 저도 애플에 있을 때 많이 느꼈어요. 회사가 커질수록,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하던 방식이 앞으로도 통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하죠. 중요한 건, “내가 결코 타협하지 않을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왜 그걸 그렇게 했지?” “내 동기가 바뀐 건 아닐까?” 그럴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다시 리셋하면서 초심을 되찾으려고 해요.
조니: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내가 가진 신념과 가치가 확고하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가 원하던 그 기준을 지킬 수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전 원래부터 엄청난 완벽주의자(control freak)였어요. 요즘 말로는 그냥 ‘엄청 신경 많이 쓰는 사람’이겠지만요. (웃음)
탑티어 디자이너 가 팀을 이끄는 법
패트릭:
그렇다면 디자이너 로서 팀을 이끌 때, 팀 내에서 좋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걸 중요하게 여기세요?
조니:
제게는 크리에이티브 팀이 전부예요. 그건 제 존재 이유이자, 제 기여의 핵심이에요.그러니까 저는 언제나 “나는 뛰어난 팀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기본이자 출발점이죠. 그리고 팀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걸 받쳐주는 작업 방식(프로세스), 정서적 기반, 신뢰 관계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제가 30년 넘게 팀을 이끌어오며 느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거예요:“좋은 아이디어는 매우 약하다.” 처음엔 그저 조용한 생각일 뿐이고, 그걸 지켜내려면 믿음, 신뢰, 배려가 필수예요. 아이디어가 조심스럽게 꺼내졌을 때, 그걸 다정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만 그 생각이 자라나고, 성장하고, 제품이 되는 거예요.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에게 디자인이란?
패트릭 콜리슨:
조니, 우리가 지금까지 디자인의 중요성과 그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조금만 시선을 바꿔서 디자인의 실제 ‘실행 과정’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가령, 디자인을 하다 보면 언제나 “빠르게 출시해야 하니까 품질은 조금만 양보하자” 라는 순간이 찾아오잖아요. 그럴 때, 속도를 선택하면 결과물이 가벼워지고, 품질을 선택하면 마감이 늦어지고… 이 균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니 아이브:
그건 정말, 우리가 매일같이 부딪히는 현실이에요. 근데 저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어요. 우선, 그런 상황에 놓이면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어요. “꼭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나?” “속도냐, 품질이냐” 같은 이분법은 사실 현실에선 잘 맞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빠르면서도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우리의 동기와 언어”예요.
우리가 어떤 단어로 문제를 설명하느냐, 그게 우리 사고방식을 결정해요. 그래서 “속도를 내자!”라고 외치는 대신, 저는 “우리는 효율적이면서도 최고의 품질을 만들 수 있어. 그게 우리 방식이야.”라고 말해요.그 말 한마디가, 팀의 방향을, 사고방식을, 그리고 결과물까지도 바꿔요.
패트릭: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조니, 규모가 커진 조직에서는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 “나는 저렇게 안 했을 거야”라는 일이 너무 자주 생기잖아요.이럴 때, 디자이너로서 또는 리더로서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세요?
조니:
정말 중요한 질문이에요. 회사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내가 직접 관여하지 못하는 영역이 생기죠. 그때 우리는… ‘타협’이 아니라 ‘초점 유지’가 필요해요. 저는 늘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는 뭐였지?” 만약 어떤 행동이나 결정이 처음의 동기와 어긋나 있다면, 저는 그걸 그냥 넘기지 않아요. 스스로 실망하고, 다시 리셋해요. 저는 믿어요. 우리가 타협하지 않을 ‘핵심 가치’를 지키면,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의 디자인 철학은 살아남는다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진짜… 좀 통제광(control freak)이에요. (웃음) 요즘은 그냥 “정말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죠.
디자이너 출신의 조직 운영 방식
패트릭:
그런 철학이 어떻게 디자인팀 문화로 이어졌을까요? 팀 안에서 진짜 신뢰와 정서적 유대감을 만드는 방법이 궁금해요.
조니:
좋은 질문이에요. 저는 팀원들과 함께 정말 진지하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일한다”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요,매주 금요일 아침, 디자인 팀원 중 한 명이 다른 모두를 위해 아침을 준비했어요. 우리는 돌아가면서 직접 요리하거나, 때론 간단한 시리얼만 차리기도 했죠. 이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어요. 서로를 위한 정성, 배려, 책임감의 표현이었어요. 그리고 그 정서가 디자인에도 그대로 스며들었어요.
또 하나 재미있었던 건, 팀원들의 집을 돌아가며 하루 동안 ‘홈 오피스’로 쓰는 거였어요. 각자 집에 팀원들을 초대해서, 그곳에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커피 테이블 위에서 스케치북을 펴고,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그 환경 속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떠올리게 돼요. 컨퍼런스룸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죠. 이건 단순히 ‘회의 장소’를 바꾸는 게 아니에요. “사람을 위한 디자인은 사람의 공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철학이에요.
문제는 ‘취향’이라는 영역이에요. 누군가는 디자인을 단순한 의견 문제로 여겨요. 하지만 저는 디자인이란, 반복된 학습, 경험, 직관, 감각의 총합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공부를 많이 했다고 다 좋은 취향을 가진 건 아니에요. 하지만 경험과 성찰 없는 의견은, 그저 의견일 뿐이죠.
패트릭: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두 가지 선택지 중 더 인간적인 쪽을 고르라. 그게 아름다움보다 더 나은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이 말, 동의하시나요?
조니:
전적으로요. 저는 사람들이 ‘배려’를 느낄 수 있다고 믿어요.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에선 물론이고, 제품이나 소프트웨어를 통해서도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신경 썼는지’를 직감할 수 있어요. 그 반대인 ‘무심함’도 느낄 수 있잖아요. 어디선가 허술하게 마감된 앱을 보면, “이거 대충 만들었구나…”라는 감정이 바로 들죠.
그래서 저는 항상 보이지 않는 곳까지 마감을 철저히 했어요. 사람들이 직접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당신을 위해 이만큼 신경 썼어요”라는 메시지를 제품이 대신 전해주거든요. 그건 결국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얼마나 성숙한 공동체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해요.
패트릭:
예술사 이야기도 하나 여쭤보고 싶어요. 초기 모더니즘은 일부러 투박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방식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조니님의 디자인은 늘 정제돼 있고 조화롭고 아름다워요. 이런 부분에서 철학적인 충돌은 없으셨나요?
조니:
그건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예술의 새로운 흐름이 생길 때는 언제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 있죠. 그 시점에는 아직 ‘조화’나 ‘아름다움’이 정리되기 전이고, 에너지가 넘쳐서 ‘격렬하게 표현되는 시기’인 거예요. 예를 들어 바우하우스 시절엔 처음으로 금속 튜브를 구부리는 기술이 생겼고, 사람들은 너무 신나서 튜브를 마구 구부려서 가구를 만들었어요. 그게 그 시절의 실험이었죠. 저도 그래요. 새로운 소재나 기술이 주어지면 그걸 가지고 끝없이 실험해보고 싶어지니까요.
패트릭:
그런데 LoveFrom 이후의 조니는 조금 더 풍부하고 장식적인 스타일도 시도하시는 것 같아요. 이건 어떤 변화일까요?
조니:
맞아요. 그건 정말 좋은 관찰이에요. 애플 시절엔 제품이 극도로 단순해야 했어요. 하지만 LoveFrom에선 우리가 맡는 프로젝트가 다양해요. 예를 들어, 영국 왕의 대관식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할 땐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죠. 이젠 저희 팀도 산업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UI 디자이너, 음악가, 건축가까지 다양해요. 그래서 스타일도 훨씬 폭넓어졌고, 고객과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게 됐어요.
AI시대, 디자이너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
패트릭:
마지막 질문이에요. 요즘 많은 사람이 기술이 주는 부작용—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주는 집중력 저하, 소셜미디어 중독, AI로 인한 교육 왜곡 같은 걸 걱정하잖아요.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해 디자이너로서 어떤 책임감을 느끼시나요?
조니:
정말 무겁고 중요한 질문이에요. 사실 요즘 제가 가장 깊이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해요. 우리가 혁신을 추구하다 보면, 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따라와요. 물론 그중에는 좋은 것도 있겠지만,
기분 나쁜 결과도 분명 있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의도하지 않았으니까 괜찮다”는 건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책임은 여전히 존재해요.
그래서 저는 최근에 이런 고민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도 몇 가지 진행 중이에요. 지금은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언젠가 공개할 날이 올 거예요. 마지막으로 패트릭이 이렇게 물었잖아요, “왜 Stripe 같은 기업이 디자인을 신경 써야 하나요?” 라고 말이죠. 그건 정말 간단해요. “배려하는 자세가 없다면, Stripe 역시시 지금의 Stripe가 아니었을 거예요.”
우리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예요. 그리고 우리가 일을 한다는 건, 곧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는 방법이에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이런 말을 했어요. “삶에는 두 가지밖에 없다. 사랑과 일.” 그렇다면 우리가 일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우리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에요. 우리는 제품을 만들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어요.
패트릭: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조니: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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