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실력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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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3년은 채워야지.”

많은 회사가 지원자의 능력을 ‘경력’을 통해 판단한다. 경력은 애초에 지원 자격이 되기도 한다. 지원자의 경험치를 가장 쉽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몸담은 회사가 싫어도 “그래도 3년은 채워야지.” 정도의 생각으로 버틴다. 숫자로 표현되는 근무 기간이 곧 취업 시장의 경쟁력이 되기에.

당연해 보인다. 경력이 높다는 건 더 많은 경험이 있다는 얘기고, 많은 경험은 곧 능력으로 연결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과거에 행해졌던 연구들은 이것이 꼭 맞는 명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1998년에 이미 프랭크 슈미트와 존 헌터는 회사들이 채용 시 보는 지원자의 요소와 실제 업무 능력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채용 담당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의 실효성을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장 연관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력 연차와 관련 직무 성과의 상관성은 0.18에 그쳤다. 이는 통계적으로 상당히 낮은 수치다. 작업 능력 테스트(0.54)보다 훨씬 낮았으며, 심지어 성격 테스트(약 0.40)보다도 낮았다.

초기에는 경력이 주효하다. 경력이 아예 없는 사람과 1년이라도 직접 일을 경험해 본 사람의 차이는 크다. 그러나 일정의 경험치가 쌓이면 연차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경력이 곧 업무 능력이라는 인식이 옅어지지 않고 있지만, 갈수록 기업은 보다 실질적인 능력을 보려 할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산업 전반에 일고 있는 변화가 눈에 띈다. 불과 몇 년 새 혁신을 무기로 한 신생 기업들이 전통 기업을 위협했다. 언제 어떤 혁신으로 기업이 몰락할지 알 수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혁신’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이를 위해 다양성,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일과 삶의 균형 등을 갖추기 위해 힘을 쓴다. 혁신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고, 누구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이기에 그렇다.

조직의 유연화를 위해서는 노동의 유연화도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들은 이전보다 수평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며 더 일찍 퇴근하게 되겠지만, 자신이 회사와 맞지 않다면 생각보다 쉽게 해고 통보를 받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휴먼 클라우드’ 식으로 인적 자원 관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휴먼 클라우드란 클라우드 컴퓨팅의 개념을 인적 자원에 응용한 것이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인재를 ‘주문’해서 사용하는 식이다.

이런 방향성으로 환경이 변화할수록 기업은 그들에게 딱 맞는 능력을 가진, ‘정말 필요한 사람’을 채용하려 할 것이다. 개개인이 갖추어야 할 능력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대학이나 몸담았던 회사의 간판, 연차 등이 그 자체로 무기가 됐다면, 이제는 보다 실질적인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오고 경력이 좋아도 마음 놓고 있다가는 뒤처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개인은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처럼 정해진 일이나 단순 반복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갈수록 특출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일을 한 사람과 비슷한 정도의 능력을 갖게 된다. 5년 뒤 내 모습이 저 과장의 모습이고, 10년 뒤 내 모습이 저 부장의 모습일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연차와 직급이 아무 소용 없어지게 되어버리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숫자 뿐인 경력을 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저서 <몰입(Flow)>으로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직장에서 ‘불안감’, 혹은 ‘지루함’을 느낀다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난이도가 너무 높다면 불안할 것이고, 자신의 능력은 높은데 난이도가 너무 쉬운 반복 업무만 주어질 경우 지루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성장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보다 5~10% 더 높은 난이도의 일을 할 때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칙센트미하이가 제시한 ‘몰입 모델’을 참고해보자.

이미지 출처: www.chrisdonnellymusic.com/flow-by-mihaly-csikszentmihalyi/

가로축은 내가 가진 능력, 세로축은 주어진 업무의 난이도를 뜻한다. A3은 불안(Anxiety)을 느끼는 경우, A2는 지루함(Boredom)을 느끼는 경우다. ‘Flow Channel’이 두 가지 값의 균형이 맞는 상태지만, A1은 능력과 난이도 모두 낮아 무관심해지는 경우다. 결국 성장하기 위해서는 도전 과제와 능력의 수준이 적절하게 맞는 A4 지점으로 자신을 ‘의도적으로’ 밀어 넣을 수 있어야 한다.

A1 : 무관심

신입사원에게 많이 찾아오는 시기로, 역량도 낮고 과업의 수준도 낮아 몰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단순한 업무에 익숙해져 ‘무관심’ 상태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A2, ‘지루함’의 영역으로 들어가거나, 주어지는 업무의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지면서 A3, ‘불안함’의 영역으로 옮겨가게 된다.

A2 : 지루함

지루함의 영역에 있을 때는 업무의 난이도를 높여야 한다. 물론 상사가 내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하게 더 난이도 높은 업무를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럴 때는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수준을 높여보는 방법이 있다. 단순 반복 업무여도 10분에 1 만큼의 일을 했다면 10분에 2 만큼의 일을 하기로 스스로 정한다거나, 원래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를 의도적으로 추가하는 식이다. 업무 대시보드를 만든다든지, KPI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트를 만드는 거다. 혹자는 ‘지루함’의 상태를 편하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일을 어렵게 만든다거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자신이 ‘성장할 욕심이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A3 : 불안함
불안의 영역에 있을 때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갈수록 이 영역에 위치하게 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샐러던트(Salaryman과 Student의 합성어로, 공부하는 직장인을 말한다.)가 늘어나는 현상도 이 위치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다. 스터디를 찾거나, 관련 서적을 찾거나,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는 툴을 찾거나, 방법은 다양하다.

‘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파악하여 난이도나 실력에 변화를 주는 것이 ‘자기 수련’의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조직 구조적으로 위와 같은 이해가 수반되는 것이다. 이는 리더가 팀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을 몰입의 상태로 이끌어 줄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생각보다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 리더의 부적절한 조치가 많이 이루어지는데, 예를 들면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팀원에게 역량을 키우도록 푸시 한다거나, 불안을 느끼고 있는 팀원에게 프로젝트를 실패한 이유를 보고서로 정리하라고 요구하여 난이도를 오히려 더 높여버리는 식이다. 조직적 차원에서 위와 같은 고민이 수반된다면 개개인은 물론 회사도 성장할 수 있다.

“그래도 3년은 채워야지.”라는 생각은 접어두자. 더 이상 연차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장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먼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자신은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보자. 지루함 혹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Flow channel’에 들어갈 수 있나 고민하자. 만약 방법이 없다면 미련 없이 떠나자. 실력으로 검증해야 하는 세상에서, 정체는 치명적이다.

출처/참고:
당신은 몇 년 차? – IBM
당신이 제자리 걸음인 이유 : 지루하거나 불안하거나 – 애자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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